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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죽음보다 강한 사랑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십자가가 용서를
제공해 주는 것 일까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하늘 드라마의 또 다른 면을 살펴보기로 해봐요. 어떻게 한 사람, 둘째 아담의 죽음이 죄지은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제공해 줄 수가 있는 걸까요?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히 9:22)다고 말하고 있어요. 여기서 사함은 물론 용서를 말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의 용서를 가능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모든 것들의 핵심인 것입니다. 죄인을 용서하는 권위를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둘째 죽음을 경험하셔야만 했어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잠깐의 목숨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으셨던 거군요😞

용서는 자기 스스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가 용서해 줄 사람을 대신해야만 하며, 그가 저지른 잘못의 결과를 기꺼이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누군가의 빚을 탕감(용서)해 준다면, 저는 그만큼의 돈의 손실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죠. 저의 친구가 주먹으로 저를 한 대 쳤을 경우, 제가 그 친구를 용서하려면 그에게 치료비를 요구하지 않고 기꺼이 그 고통을 감당해야 하겠죠. 내가 불이익을 당하며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가 아닐까요?☺️

공의는 모든 범죄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것에 비례하여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즉,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주먹으로 한 대 친 사람은 그도 똑같이 한 대 맞아야 해요. 그러나 용서는 범죄자가 받아 마땅한 형벌로부터 그를 구해줘요. 그러나 용서하는 자는 범죄자가 형벌을 받지 않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하려면, 자신이 그 결과 즉, 죄의 대가를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 없는 사람이 죄를 범한 자를 대신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볼께요. 어떤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해 주기를 원한다고 가정을 해 볼께요. 살인자가 범법자로 형벌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법이 살인자에게 요구하고 있는 형벌인 사형을 자신이 떠맡아야 하겠죠. 자신의 아들에게 저지른 범행에 대한 형벌을 자기 자신에게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자신의 죽음을 허락하여야 하며, 법적으로 살인자에게 가해져야 할 형벌을 그를 대신해서 충족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예증은 우리로 하여금 대속의 뜻이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어요. 지금 우리는 깨어진 관계의 재조정을 다루고 있는데요, 이것이 바로 대속입니다. 항상 양편이 관련됩니다. 잘못을 당한 쪽과 잘못을 범한 쪽, 잘못을 당한 쪽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죄를 저지른 쪽입니다. 인간들 때문에 괜히 죄없는 하나님께서 엄청난 희생을 하셔야 했네요 죄송합니다😭

공의는 죄의 합당한 배상을 요구해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어요. 법과 공의에 의해서 이미 규정된 형벌을 집행하든지, 아니면 피해자 쪽이 자비로운 용서를 베풀어야 하겠죠. 만약, 용서가 베풀어진다면, 용서하는 자는 상대방이 저지른 죄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대신하여 법이 정하고 있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법이 정하고 있는 죄에 대한 형벌은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이 죄인에게 요구하는 형벌인 둘째 사망의 고통을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당신의 몸으로 당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에 얼마나 고통이 많으셨을까요?😱

죄에 대한 형벌은 첫째 죽음이 아니라 둘째 죽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깊은 고뇌를, 죽음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로마시대에 수많은 범죄자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꼭 같은 방법으로 처형되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단지 첫째 죽음의 신체적 고통만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악한 죄인이 유황불 못으로 던져지는 고뇌와 두려움을 느끼는 무서운 정죄를 경험하셨어요. 그분의 예민한 본성은 더러운 강간, 살인, 흉악한 죄들을 대신 지심으로써, 심한 충격과 상처와 수치를 받았어요. 그분께서는 죄에 대한 형벌이 멸망 받을 자에게 내려지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대가를 치르시기 위해서, 즉 율법의 두려운 진노가 당신 자신 위에 떨어지게 하려고 죄 자체가 되셔야만 했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감히 측량할 수가 없네요😔

이와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 구세주의 생명이 끊어지는 시간에 그를 애워싼 영적 고뇌의 신비를 설명할 길이 없어요.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예수께서는 인류가 쌓아놓은 죄를 당신의 찢어진 가슴으로 지셨어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한 줄기의 빛도 십자가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 닿을 수 없었답니다. 하늘 아버지와의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지시면서 고뇌하시는 하나님 아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죄인들을 위한 용서를 제공해 주시기 위해서, 죄인들의 죄과를 대신 취하시는 주님의 정신적 고뇌와 더 이상의 아무런 소망도 없이 영원한 둘째 사망을 당하는 죄인들이 느끼는 고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야만 했어요. 예수님께서 얼마나 외로우셨으며, 무서우셨으며, 슬프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외치신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거 같습니다🥺

아무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과 똑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으셨다고 말하지 마세요. 사악한 인간들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죽이기까지 하나님께서 참으신 것은, 그분께서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과 똑같이 우리 죄인들도 사랑하신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했던 선택은 아주 단순했어요. 우리를 법의 정죄 아래에 내주시고 당신의 아들을 살리시든지, 아니면 당신의 아들을 법의 정죄 아래로 내어주시고 우리를 살리시든지 둘 중의 하나였어요. 그분께서는 그 밖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율법이 범하여졌어요. 하나님의 품성을 반사하는 거룩하고 완전한 율법은 변경되거나 파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이 치러져야 하죠.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깨뜨린 자들을 사랑하셨어요. 또한, 그분께서는 당신의 아들도 사랑하셨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예수님도 아들이고 우리도 아들이기 때문에 엄청난 마음의 고통이 있으셨겠죠😱

십자가 주변의 장면을 다시 한 번 바라볼까요?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리고 주먹으로 치는 것을 내려다 보셨어요. 주님의 옷자락 끝을 만질 가치도 없는 자들이 그분을 죽였어요.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쳐서 순식간에 없애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어요. 하나님은 그들의 잔인한 학대와 매질에서 당신의 아들을 구하실 수가 있었어요. 그러나 만일 그분께서 개입하셨더라면, 단 한 인간도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담, 아브라함, 요셉, 다니엘, 그 외 아담의 모든 후손은 아무런 소망 없이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이였죠. 그들의 부활은 전적으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과 부활에 달렸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개인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제 모습도 하나님은 미리 아셨겠죠? 제 이름도 물론 태초부터 알고 계셨을거예요! 듬직해요😌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생각하셨을 거예요. 그분은 우리 모두의 비참한 실패들을 보시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영원히 당신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어요. 그분께서는,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제공된 용서와 구원이 있음에도 대다수의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도 아셨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주 적은 소수가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을 감사함과 기쁨으로 받아들일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 아들의 고통으로부터 돌아설 수밖에 없으셨고, 당신의 아들이 짓지도 않은 죄의 짐 아래 눌려서 두 번째 사망의 고통 가운데서 죽는 것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태양마저 그 무서운 장면으로부터 자신의 얼굴을 가려서 칠흑 같이 어둠이 십자가를 에워쌌고, 땅도 저항하여 떨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크게 외치시며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요 19:30) 하늘 천사들도 모두 그 장면에서부터 얼굴을 돌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